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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편지
2016. 7. 6. 15:45 category : 2011

 평안하신가요, 당신.


 그리고 또 그리던 당신의 얼굴도 이제는 서서히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만 같은 봄날입니다. 오랜 시간 놓았던 펜을 다시 잡으니 영 어색하기 그지 없어요. 무어라 적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질 않을 뿐더러 머릿속은 새하얗기만 하니 말이에요. 그러나 굳이 펜을 놓고 싶진 않습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여서, 그래서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요. 정말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겨울의 추위도 보드라운 봄바람에 서서히 물러나는 듯 싶습니다. 오랜 시간 장롱 속에 보관해있던 겨울 옷도 서서히 정리해 나가야 겠지요. 홀로 남은 집이 서서히 익숙해져갑니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더이다. 휑량하기만 하던 마당에는 어미개와 새끼 강아지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할 일이 없을 때에는 강아지들을 바라보곤 해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것들이 꼼지락거리니 그것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어미개는 기력이 없어보이지만 새끼들을 데려갈라치면 제 이빨을 세우더군요. 개들은 모성애가 강하다는 것이 정말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제 눈으로 보아야만 믿던 저였으니 말이에요.


 예전에 당신과 같이 걷던 그 길을 저 혼자 거닐어 보았습니다. 평생, 당신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걸을 수 없으리라, 감히 장담했는데. 저조차도 제가 놀랍더이다. 처음에는 불에 달구어진 돌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듯이 고통이 치밀어 올랐으나, 꿋꿋이 걷다 보니 제법 멀쩡히 걸을 수도 있게 되었어요. 길의 초반에는 산수유 꽃이 만발하였더군요. 묵묵히 걷다가 멈춰서 바라본 노오란 꽃에 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었어요. 돌아가던 중 바닥에 떨어져 있던, 꽃이 많이 달린 가지 하나를 주워 들고 왔습니다. 분명 바닥에 떨어진 것인데도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아 참, 고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애처로워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일까요, 저만의 착각일까요.


 그 때, 산수유 꽃을 저의 귓언저리에 꽂아주었던, 당신의 손길…이, 생생하더군요. 더 이상 걸을 수 없던 것은, 떨구어졌던 가지를 주웠던 것은, 그럼으로서 눈물을 떨구어낸 것은 그 탓이었던가요.


 새벽 바람이 제법 차게 불어오는 듯 해요. 이제는, 펜을 놓아야 겠습니다. 당신의 안부와 목적지를 묻고, 평안을 기원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