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60610
doriha
2016. 7. 6. 03:15
나는 우리가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아요. 우습게도 말이죠.
준의 목소리는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로 덤덤했기에 나는 그것이 마치 새벽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디제이의 읊조림 같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준의 목소리 때문, 이라기보단 아마 현실감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허공을 걷는 듯 붕 뜨는 느낌이 생경했다. 이미 몇 번이고 겪은 일임에도 익숙해질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어쩌면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걸지도 몰랐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준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그 눈동자가 우주 같다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던 때가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인다. 준은 내 생각을 읽는 것마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사랑하며 앞으로 행복할 여지가 있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눈 앞에 선연하지만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무언가였다. 그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말을 내뱉을 새도 없이 입 안이 바싹 말랐다. 건조하기 그지 없는 사막 한 가운데 덩그라니 놓인 것처럼 그녀는 숨을 내뱉는다.
잘 가요, 내 사랑.
그녀를 부르기 위해 입을 벌린다. 그러나 이름은 부르기도 전에 힘없이 바스라진다. 준은 나를 보며 웃었다. 내리쬐는 햇볕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