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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걸 본 적 있나요?
본 적이 없는 게 태반일 거에요. 왜냐면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행동하고 여유를 가질 줄을 모르거든. 더군다나 도시에서 꽃이 핀 걸 보려면 공원이나 뒷산 같은 특별한 장소로 가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귀찮고 시간이 없잖아요. 그렇죠? 아마 당신도 그럴 거에요. 아, 나도 꽃이 피는 걸 본 적은 없어요. 꼭 어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네요. 그렇지만 어느 정도 공감한 건 사실이죠?
지금 당신 얼굴을 보니까 왜 그런 말을 하나, 의아해하는 것 같네요. 당연해요. 갑자기 말하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구구절절 다른 얘기하는 건 취미가 아니니까… 꽃이 피는 걸 한 번 상상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왜냐고는 묻지 마요, 굉장히 예쁠 것 같지 않나요? 당신이나 나나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데, 한 번 보고 싶으니까. 하는 수 없이 상상이라도 하자는 거죠. 자아, 이제 눈을 감아요. 그리고 내 목소리를 배경 삼아서 상상해봐요. 다른 모든 소리와 후각, 감각은 이제 저 뒤로 미뤄두고요. 준비 됐나요?
이제 막 피려고 하는 꽃봉오리는 새벽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이슬을 머금고 다소곳하게 고개 숙이고 있어요. 어느 꽃이라도 그건 다를 게 없어요. 사소한 일에도 두 볼을 붉히고 수줍게 미소 짓는 가녀린 소녀같죠. 이제 꽃봉오리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더 움츠러 들어요. 아주 느리고 신중하게. 조바심 내지 말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요. 꽃은 우리와 달라서 조바심 낼 이유가 없거든요. 사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죠.
꽃이 서서히 벌어져요. 굳게 닫혀 있어 볼래야 볼 수 없던 속내가 들어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죠. 당신도 느껴지나요? 두근거리는 심장 말이에요. 항상 생각하지만, 나는 이 순간이 가장 설레고 두근거려요. 소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꽃잎이 휘어지네요. 아, 지금 당신 표정이 딱 감동 받았다는 표정인 거, 알고 있어요?
꽃의 수줍고 설레는 모습은 없지만 이제 꽃 개인의 매력이 드러나는 거에요. 장미는 고혹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이, 국화꽃은 수수하고 선한 모습이, 안개꽃은 작고 소박한 모습이. 그 외에도 다양한 꽃이 있으니까, 심심하거나 또 보고 싶을 때면 내가 말한 대로 해봐요. 알았죠? 꽃이 피는 건 꽤나, 아름다운 모습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