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0707 그래도 여전히

doriha 2016. 7. 6. 16:44

빅뱅 팬질하면서 얻는 건 해탈하고 소비 밖에 없는 것 같아.”

공감. 무한 공감.”

 

버거킹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친구에게 문득 말을 내뱉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다. 나는 앨범이 나왔다는 글을 다시 한 번 훑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친구의 한숨 소리도 들린 것을 보면 아마 나와 똑같은 내용의 글을 보고 있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글자와 사진 중에 다섯 글자가 톡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비단 착각이 아니겠지. 그 아래, 블로그 주인장의 멘붕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양현석 망할놈진짜, 빅뱅 팬중에 대부분이 학생이란 걸 알고 있을 텐데 뭔 놈의 가격을 이렇게 높게 잡는지 몰라.”

내 말이. 게다가 버전도 다 다르게 나오고. 아니, 눈이 훈훈해서 보기는 좋다만솔직히 하나만 사기엔 뭔가 찜찜하고 아쉽고 그러지 않냐?”

그러니까! 내가 한 명만 좋아하는 개인 팬이 아니고서야.”

 

물론 내가 탑을 조금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뒤에 추가 될 말은 꿀꺽 삼킨 채 휴대폰의 화면을 끄고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내려 두었다. 곰곰이 생각하자니 더 화나네. 인상을 팍 찡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몇 달 전에 샀던 2011 빅쇼 DVD의 가격이 생각나자 아직도 속이 쓰라리다. 내용은 좋긴 좋았는데

활동 기간도 짧은 것들이 앨범이나 화보집 같은 거 가격만 높고.”

솔직히 활동기간하고 가격이 반비례하긴 하지.”아니, 그럼 기간을 늘리고 가격을 줄이면 될 거 아냐!”

", 소리 낮춰.“

 

기지배 목소리만 커선. 투덜거리는 친구를 매섭게 흘기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게 마냥 얄밉다.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냐? , 그렇지.

 

근데 니가 말했잖아. 빅뱅 팬질을 하면서 얻는 건 뭐?”

해탈과 소비.”

빙고. 난 이미 해탈 했걸랑.”

, 그게 그렇게 쉽나.”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눈을 흘기고 물이 송글송글 맺힌 콜라를 원샷했다. 그 즉시 눈물이 나옴과 동시에 미친 듯이 콜록거렸지만. , 목 따가워. 친구가 혀를 차는 소리가 적나라하다.

 

어이구, 병신. 더군다나 너하곤 달리 나는 팬질이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노래 다운 받고 스트리밍 돌리고, 투표하고, 방송 챙기고. 그걸로도 버겁다, 이 언니는.”

언니는 무슨, 지랄하고 앉았네.”

아니 이 새끼가.”

 

정강이를 차려는 기색이 엿보여 냉큼 다리를 들자 그 즉시 발이 날아온다. 어이쿠, 위험했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빅뱅 정체성이 엄청 모호하다고 생각하거든.”

? 왜 화제가 거기로 가냐.”

그냥 들어, 생각난 거니까. 나 원래 토론 같은 거 좋아하잖아.”

어이구, 어련하시겠어요.”

이게 아까부터 자꾸아무튼. 몇몇 사람들이나 기사에서는 이제 빅뱅이 아이돌을 넘어서 아티스트로 간다고 하는데, 그만큼 실력이 좋기는 하지. 요즘에 나오는 얼굴도 못 생기고 실력도 거지 같은 별 잡것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도 맞는 말이고.”

 

중간의 거침 없는 묘사에 쿡, 웃고는 이거 블로그에 올리면 몰매 맞겠구만, 하는 퍽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감자 튀김 하나를 오물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은, 나는 아이돌으로서 시작했는데 아티스트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왜냐면 소문이라는 게 있잖아. 지용이 대마초 사건이나, 대성이 교통사고나 평생 붙어 다니는 거 알지? 좋게 마무됐는데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아이돌도 그거랑 똑같은 거야. 팬들이나 자기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하면 뭐하냐? 다른 사람들은 예전의 아이돌 빅뱅을 기억할 텐데.”

, 그건 그렇네.”

근데 빅뱅은 지금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실력이 너무 좋다 이거지. 외국에서도 인정 받았고.”

뱅부심 돋네.”

이런 건 가져도 돼.”

 

단호하게 말하는 얼굴이 뻔뻔하게까지 보인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사, 5~6년 간 한 가수만 바라봤는데, 자부심이 안 생기면 이상한 거지. 저런 심오한 의견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건 됐고빅뱅 활동 좀 길게 길게 하면 소원이 없겠네.”

예능도 좀 나오고, 스페셜 에디션도 작작 내고!”

노래 중복도 있다. , 팬 서비스도 이번에 했던 것 만큼만.”

권지용 파격 헤어 스타일권지용 넌 내게 멘붕을 줬어.”푸하하하, 그거 진짜 공감. 버섯 머리 보고 진짜, .”

빨간색 머리 좋았는데!”

 

내 말이 그거라니까. 호들갑을 떠는 친구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던 태도는 모두 증발한지 오래다.

, 빅뱅이 죽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이렇게 빅뱅을 좋아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