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07 그래도 여전히
“빅뱅 팬질하면서 얻는 건 해탈하고 소비 밖에 없는 것 같아.”
“공감. 무한 공감.”
버거킹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친구에게 문득 말을 내뱉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다. 나는 앨범이 나왔다는 글을 다시 한 번 훑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동시에 친구의 한숨 소리도 들린 것을 보면 아마 나와 똑같은 내용의 글을 보고 있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수많은 글자와 사진 중에 다섯 글자가 톡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것은 비단 착각이 아니겠지. 그 아래, 블로그 주인장의 멘붕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양현석 망할놈… 진짜, 빅뱅 팬중에 대부분이 학생이란 걸 알고 있을 텐데 뭔 놈의 가격을 이렇게 높게 잡는지 몰라.”
“내 말이. 게다가 버전도 다 다르게 나오고. 아니, 눈이 훈훈해서 보기는 좋다만… 솔직히 하나만 사기엔 뭔가 찜찜하고 아쉽고 그러지 않냐?”
“그러니까! 내가 한 명만 좋아하는 개인 팬이 아니고서야.”
물론 내가 탑을 조금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뒤에 추가 될 말은 꿀꺽 삼킨 채 휴대폰의 화면을 끄고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내려 두었다. 곰곰이 생각하자니 더 화나네. 인상을 팍 찡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몇 달 전에 샀던 2011 빅쇼 DVD의 가격이 생각나자 아직도 속이 쓰라리다. 내용은 좋긴 좋았는데…
“활동 기간도 짧은 것들이 앨범이나 화보집 같은 거 가격만 높고.”
“솔직히 활동기간하고 가격이 반비례하긴 하지.”“아니, 그럼 기간을 늘리고 가격을 줄이면 될 거 아냐!”
"야, 소리 낮춰.“
기지배 목소리만 커선. 투덜거리는 친구를 매섭게 흘기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게 마냥 얄밉다. 넌 그렇게 생각 안 하냐? 뭐, 그렇지.
“근데 니가 말했잖아. 빅뱅 팬질을 하면서 얻는 건 뭐?”
“해탈과 소비.”
“빙고. 난 이미 해탈 했걸랑.”
“흥, 그게 그렇게 쉽나.”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에 다시 한 번 눈을 흘기고 물이 송글송글 맺힌 콜라를 원샷했다. 그 즉시 눈물이 나옴과 동시에 미친 듯이 콜록거렸지만. 아, 목 따가워. 친구가 혀를 차는 소리가 적나라하다.
“어이구, 병신. 더군다나 너하곤 달리 나는 팬질이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노래 다운 받고 스트리밍 돌리고, 투표하고, 방송 챙기고. 그걸로도 버겁다, 이 언니는.”
“언니는 무슨, 지랄하고 앉았네.”
“아니 이 새끼가.”
정강이를 차려는 기색이 엿보여 냉큼 다리를 들자 그 즉시 발이 날아온다. 어이쿠, 위험했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빅뱅 정체성이 엄청 모호하다고 생각하거든.”
“엥? 왜 화제가 거기로 가냐.”
“그냥 들어, 생각난 거니까. 나 원래 토론 같은 거 좋아하잖아.”
“어이구, 어련하시겠어요.”
“이게 아까부터 자꾸… 아무튼. 몇몇 사람들이나 기사에서는 이제 빅뱅이 아이돌을 넘어서 아티스트로 간다고 하는데, 그만큼 실력이 좋기는 하지. 요즘에 나오는 얼굴도 못 생기고 실력도 거지 같은 별 잡것들 사이에서 유독 돋보이는 것도 맞는 말이고.”
중간의 거침 없는 묘사에 쿡, 웃고는 이거 블로그에 올리면 몰매 맞겠구만, 하는 퍽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감자 튀김 하나를 오물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은, 나는 아이돌으로서 시작했는데 아티스트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왜냐면 소문이라는 게 있잖아. 지용이 대마초 사건이나, 대성이 교통사고나 평생 붙어 다니는 거 알지? 좋게 마무됐는데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아이돌도 그거랑 똑같은 거야. 팬들이나 자기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하면 뭐하냐? 다른 사람들은 예전의 아이돌 빅뱅을 기억할 텐데.”
“아, 그건 그렇네.”
“근데 빅뱅은 지금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실력이 너무 좋다 이거지. 외국에서도 인정 받았고.”
“뱅부심 돋네.”
“이런 건 가져도 돼.”
단호하게 말하는 얼굴이 뻔뻔하게까지 보인다. 나는 낄낄거리며 웃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사, 5~6년 간 한 가수만 바라봤는데, 자부심이 안 생기면 이상한 거지. 저런 심오한 의견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다. 그건 됐고… 빅뱅 활동 좀 길게 길게 하면 소원이 없겠네.”
“예능도 좀 나오고, 스페셜 에디션도 작작 내고!”
“노래 중복도 있다. 아, 팬 서비스도 이번에 했던 것 만큼만.”
“권지용 파격 헤어 스타일… 권지용 넌 내게 멘붕을 줬어.”“푸하하하, 그거 진짜 공감. 버섯 머리 보고 진짜, 와.”
“빨간색 머리 좋았는데!”
내 말이 그거라니까. 호들갑을 떠는 친구의 모습이 사뭇 진지했던 태도는 모두 증발한지 오래다.
뭐, 빅뱅이 죽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이렇게 빅뱅을 좋아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