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쿠로켄] 이유가 없는 것들
언제까지고 그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듯, 나 역시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죽음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줄은 몰랐다는 얘기였다. 그의 머리색을 꼭 닮은 검은색 우산은 내가 몇 주 전에 그에게 빌린 것이었다. 손잡이를 붙잡고 빙글, 한 바퀴 돌려보았다. 아침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몇 시간 내내 그칠 줄을 몰랐다. 쿠로, 네 죽음을 슬퍼하나 봐. 답지 않게 감상적인 소리를 하며 우산을 다시 돌렸다. 장례식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 게 어느덧 삼십 분째였다.
쿠로오 테츠로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오후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던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시내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 같다며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너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았어, 켄마. 그런 말을 들을 땐 언제나 기분이 묘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그와 내가 같이 있는 건 당연했고 한 사람의 소식을 아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는 금방 끊겼고 새삼스럽게 밖에서 비가 온다는 걸 알았다. 장마였다.
그리고 이틀 뒤, 또 다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울기만 했다. 빗소리가 굵어졌다. 그녀의 울음 소리와 섞여 귓가가 소란스러웠다. 나는 차게 식은 시트를 매만지며 장례식장의 위치를 물었다.
누군가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건 쉽다. 그건 늘 있는 일이자, 일종의 게임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선을 그어 다른 사람을 들여보내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을 묵묵히 바라보는 걸 선택했다. 쿠로오 테츠로는 그 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와 말을 건넸다. 그는 관찰할 필요도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얄팍한 선으로 만들어진 좁은 원 안에 서 있는 두 사람. 어느샌가 그게 너무 당연해져서 내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수였다. 누구든 쉽게 떠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방심했다. 왜 그랬을까? 바짓단이 축축해질 즈음에야 우산을 접고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그의 이름이 보였다. 쿠로오 테츠로, 20세. 그의 나이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고작 이십 년이구나. 고작….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빈소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탁한 향 냄새와 국화꽃 냄새가 섞이고 울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붉게 물든 눈을 하고 그의 사진 앞에 국화꽃을 내밀었다. 영정 사진은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을 확대해 자른 것이었다. 아마 그 옆에는 나를 비롯한 배구부원들이 있었을 것이다. 한 손에는 졸업장을,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었던 그를 생각하다 메마른 눈가를 만졌다. 그가 쥐여주었던 두 번째 단추는 여전히 주머니 안을 뒹굴고 있었다. 그게 몇 달 전 일이라니. 쿠로, 소리 없이 중얼거리다 입을 닫았다.
다른 사람이 나와 그가 함께 있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듯, 내가 그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듯, 우습게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건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만 실수를 했던 것도, 그가 죽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는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세어 보다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많았다. 그래도 나는 어째서, 라고 계속 생각했다. 이유 없는 물음들이 켜켜이 쌓여 간다. 활짝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울음이 쏟아졌다. 멈출 수가 없었다. 늘 그런 것에 답을 내려주는 것도, 꼬인 매듭을 풀어주는 것도 전부 그였다. 쿠로. 울지 말라고 얘기해 줘. 네가 별 거 아니라고 얘기해주면 전부 괜찮을 것 같으니까.
어째서, 네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거야?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어도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