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23 네가 왜
너의 자리는 내 눈길 바로 아래,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만한 곳이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기만 하면 과거에 너일 것이었던 하얀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이 보였고 그 앞에 과거의 네가 웃고 있는 사진과 소소한 소지품들이 보였다. 그 물건들 사이에는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었으나 무엇이든 간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추억을 떠올릴 법도 한데 머릿속이 텅 빈 듯 했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 이곳에 올 준비를 할 때부터 그랬다. 오는 길을 곱씹고 버스를 타고 걸음을 옮기고 납골당에 들어와 너를 찾는 지금까지도 그랬다. 생각을 하려 해도 생각은 자꾸만 바닥에 툭툭 떨어져 힘없이 사라졌다. 너를 보고 나는 마침내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너는 웃으면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네가 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그랬다. 나로서는 당혹스럽고 너로서는-아마도- 안타깝게도, 무엇을 하기도 전에 나는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네가 왜 나를? 전화하는 목소리는 앳되었고 버석거리면서도 눅눅했다. 한참 오열하고 난 후의 그것과 똑같았다. 언니가 많이 보고 싶다고 했어요. 하마터면 수화기를 놓칠 뻔한 말. 그렇구나, 라는 말이 힘겨워 대답하지 못했다.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고도 했어요.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납골당의 위치를 듣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숨을 몰아 쉬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힘겨워 하는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숨을 멈추고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울 것 같이 코 끝이 시큰거리면서도 눈매는 한없이 버석거렸다. 나는 그 대신 폭소했다. 울고 싶은 것처럼 웃었다. 바닥을 뒹굴고 웃음을 터트렸다. 허공에 공허하게 퍼지는 웃음소리가 처량했다. 눈물 대신 웃음을 터트리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인가. 좋은 일이 아니라면 나쁜 일인가.
전화를 받은지는 아흐레가 지났다. 9일. 차가운 유리에 손을 올리고 일수를 곱씹었다. 너의 얼굴을 보지 않은 것은, 정확히는 내가 너를 피한 것은 2년하고도 반년. 내 이름을 아이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아흐레 동안 나는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결국에는 이곳에 온 것은.
“말이라도 했어야지.”
첫사랑이라고… 말하지 말랬는데,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흐느낌 사이로 드문드문 들리는 말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직접 말했어야지, 왜 그걸…”
바닥이 차다. 너의 뼛가루 또한 사늘하게 식어 있을 것이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