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 오늘이 그 날이다.

doriha 2014. 10. 2. 15:18

오늘이 그 날이다. 내가 죽는 날. 정확히는 1년 동안의 죽음을 맞이하는 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흥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었기 때문에 애들과 만나서 시시덕거리거나 노는 게 전부였는데, 정확히 1시간 전부터 기분이 땅을 뚫고 들어갈 것 같이 축축 처진다. 밥도 먹기 싫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무력하다는 게 이런 걸까, 나는 멍하니 생각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사실 지금 내 상태가 무력한 지 아닌 지 알 게 뭐람. 몇 번째 하는 건지 모를 한숨이 다시 터져 나왔다. 아마 내 친구들도 나와 똑같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늘에서 마땅히 빛나야 할 별과 달은 텔레비전과 가로등 불에 잠식되어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뾰족히 세운 무릎팍에 묻었던 얼굴을 들고 조그마한 창문을 바라봤다. 평소엔 하나라도 보이던 별이 오늘은 단 한 개도 보이지 않는다. 기분이 더 우중충 해졌다. 무기력하게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과 별 대신이라는 듯 형형히 빛나는 그것이 내 기를 쪽쪽 빨아 먹는 기분이었지만, 단지 착각 임을 안다.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지만.

 

20xx년, 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아줌마, 과도해서 말하지 말라구요.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즐겁다고. 두꺼운 코트를 껴입고 과장된 말을 던지는 아나운서에게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몸을 더 둥글게 말았다. 신이 있다면 저를 몇 시간 전, 아니 1년 전으로 되돌려 주세요. 그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눈을 꾹 감았다가 떴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작아서 이따금은 답답해지는 원룸, 구식 TV, 여전히 떠들고 있는 아나운서 아줌마.

 

딱 1년이야. 12개월, 아니지, 11개월만 참고 버티면 돼. 계절? 시간? 상관 없어. 네 손은 이제 펜만 집어야 되고 네 눈은 이제 교과서, 혹은 문제집만 봐야 돼. 그래야지 살 수 있으니까. 너도 2년을 죽기는 싫을 거 아니야.

너도 대학은 가야 할 거 아냐, 어쩌려고 그래.

아, 진짜 미친 것 같아. 말이 되냐? 난 아직도 이게 꿈인 것 같다고.

 

"그래…… 꿈이면 얼마나 좋겠어."

 

내가 이제 고3이라는 게.

마지막으로 들리는 호들갑스러운 친구의 목소리에 대답하고 눈을 꾹 감았다. 둔탁한 감각과 함께 침대에 몸이 뉘여졌다. 오늘은 내가 죽는 첫 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