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41003 기억할 만한 지나침

doriha 2015. 6. 20. 20:59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례식이 끝났다.

  곁에 남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았다. 나는 한참을 아버지의 영장 사진 앞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머리는 무겁게 가라앉는데 가슴 한편은 텅 비어 갔다. 느껴본 적이 없기 떄문에 뭐라고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밖에 나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겨울, 숨을 뱉으면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 해가 저물 즈음부터 내리던 눈은 새벽이 다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어둠이 빛을 집어 삼킨 밤이었다.

  예견된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버지의 죽음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등을 떠민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의사는 사망 원인이 과로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피로를 호소한 적이 없었다. 불쑥 솟은 의문 떄문이었는지 과로사, 와 아버지, 는 도무지 어울리질 않았다. 안으로 굽은 어깨와 주름이 깊게 새겨진 손,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낡은 구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 위에 새겨지는 발걸음은 끝이 없었다. 죽음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오랜 기억을 되짚었다.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던 소맷자락과 듬성듬성 빠지던 머리카락, 저녁이 다 되어서도 갑갑하게 매여 있던 넥타이 같은 것들. 당연했기 때문에 지나쳤던 사소함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어둠이 미처 삼키지 못한 빛이 아른거렸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이었다. 그 아래 울지 않기 위해 입을 굳게 다물고 두 주먹이 새하얘질 정도로 힘을 주었으나 분명히 울고 있는 사내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과 일그러진 표정이 사진처럼 선명했다. 어쩔 수 없이 굽은 어깨와 낡은 구두가, 흠 하나 없이 단정한 양복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앞으로도 한참을 그치지 않고 내릴 모양이었다. 나는 다리가 땅에 붙은 것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새벽은 길었고 나는 침묵을 지키기 위해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켰다. 울지 마세요. 제발 울지 마세요, 아버지. 마지막까지 그러지는 마세요.

  눈물을 닦지 못한 사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조차 사그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버지의 기일이 올 때마다 나는 사내를 떠올린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진다. 정처없이 방황하는 사람에게 어슴푸레한 빛이 보인다. 눈은 또 한참이나 내릴 것이다. 새벽은 길고 텅 빈 사무실에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