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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5
2016. 7. 6. 15:37 category : 2012

아이는 폐허의 가운데 오도카니 살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생필품을 찾으라는 상부의 명령에, 작은 욕짓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성실하게 돌무더기를 뒤지던 에녹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은 눈동자를 에녹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돌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듯이, 작은 틈새에 들어가 겁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보았던 그 눈동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래서였는지 에녹은 한참동안 그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자 눈을 데굴데굴 굴린 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 때까지는. 


「…전쟁이 끝났나요?」


그게 아이가 에녹에게 건낸 첫 마디였다.

유창한 말에 놀랐던 것 같기도 했다. 에녹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에녹을 부르다 제 풀에 지친 동료는 돌아갔거나 아니면 저 멀리로 가버린 듯 했다. 그게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알 수가 없어 에녹은 애매하게 얼굴을 구겼다가 느릿하게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다행이라는 듯이.


「너…」

「……?」

「이름이 뭐지?」


표정이 눈동자에 다 드러나는 구나. 에녹은 그 사실을 깨우치며 아이에게 물었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입술이 튼 아이는 말이 없었다. 이름이라는 단어를 모르거나 이름이 없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든 아이를 본 에녹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는?」


아이가 망설인다. 이름을 물었을 때와는 달리. 고개를 숙이고 답한 아이의 목소리가 매우 작아 에녹은 자신의 청력이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없어요.」

「없어?」


끄덕끄덕.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아무래도 전쟁중에 죽었거나, 아니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더 이상 물었다간 꼭 울 것 같은 모양새라 에녹은 입을 다물고 또 다시 한참을 망설였다. 데려갔다간 상부에서 뭐라고 하겠지만 여기에 두고 가기엔 자신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거니와 두고 갔다간 굶어 죽을 게 뻔하므로. 더군다나 아이는 전쟁 통에 무언가를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삐쩍 마른 게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이 뻔했다.

…이걸 어쩐다. 에녹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질 찰나, 아이의 미성이 다시 귓가를 건들였다. 에녹은 문득 아이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저기, ……데려가주시면 안 될까요?」


간절한 눈빛이 에녹에게 닿는다. 에녹은 몸서리가 처지는 것을 간신히 참고 침을 삼켰다. 여기에 두었다간 두고두고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릴 모습이 훤했다. 아마 밤에 꿈을 꿀 때도 이 검은 눈동자가, 이 목소리가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어거지일지도 모르는 이유를 가져다 붙인 에녹은 한숨을 내쉬고 장갑을 낀 손을 아이에게로 뻗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인다. 일순 바람이 불어 아이의 짧은 머리가 흔들리자 순수한, 때묻지 않은 체취가 코끝을 간질였다.


「가서…」

「……」

「…일단 씻기부터 하자.」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겠군. 에녹은 한숨을 내쉬고 아이를 단단히 안았다. 아이가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굉장히 예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