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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11 황혼
2016. 7. 6. 16:33 category : 2012

어슴푸레한 빛이 골방 안을 밝힌다. 바닥에 몸을 수그려 토막잠을 취하고 있던 나는 힘겹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닫힌 창문을 바라봤다. 이물질 하나 없이 말끔한 유리창은 마치 액자 같아 거기에 비추는 풍경은 이름 없는 화가가 정성 들여 그린 그림 내지 아직 익숙지 못한 사진기로 찍어 놓은 사진과 같이 아름답다. 그러나 한낱 그림과 사진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으리라. 이 아름다운 광경을 그 누가 그대로 담을 수 있을 것이며 그 누가 만족할 것인가.

해가 진후의 어스름한 빛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초가집과 한옥을 뒤엎고, 근래에 새로 들어온 새하얀 서양식 건물을 물든다. 해가 지고 난 직후, 낮과 밤의 그 중간. 이 빛을 어떠한 빛이다, 하고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감히 그것을 시도하려는 사람조차 있을 텐가. 가늘게 떨리는 숨을 내뱉고 싸하게 내려앉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의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떠나기 전에는 항시 이곳에서 같이 이것을 보았는데.

가보지 못할 저 어딘가의 모래알 수북이 쌓인 고비사막, 그곳을 헤매는 행상대와 아프리카의 푸른 녹음 속 새까만 피부의 활 쏘는 인디언을 경이롭다는 듯 말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선했다. 밤이 되면 새까만 하늘에 점점이 별이 수놓아져 있고 이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워 그곳을 직접 가본 듯 말하는 모습에 나는 당신과 같이 여행을 가는 듯 착각을 할 정도였다. 언젠가는 같이 가보자며, 내 손을 잡고 부드럽게 웃었던 그 모습. 그래서 나는 그것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망연히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했었지. 당신이 말했을 때엔 정말로 그렇게 될 줄로만 알았던 것이 얼마나 미련한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얼음장 같은 겨울의 땅바닥보다 더 서늘한 감옥 속에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내게 말했던 그것, 사막과 아프리카를 떠올리며 고개 주억거리던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미련타하며 하염없이 탄식하고 있을까. 골방 창문의 반의반도 안 되는 감옥 속 창문으로 이 아름다운 것을 다시 볼 수나 있을까?

아아, 희미한 탄식이 절로 베어 나온다. 당신이 나의 곁에 있더라면. 미련한 짓 하지 말라 언질하여 그저 옆에 붙들어 놓고, 평소와 같이 넋을 놓고 황혼을 멀거니 바라보며 속삭였더라면. 허구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그랬다면 내가 당신의 입술에 입 맞추리라. 아프리카와 사막을 입에 담는 그의 입술에 입 맞추고 안쓰럽고 안타까우며 미련한 그들과, 당신을 위로하련만. 황혼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낮의 사막은 굉장히 신비롭고 아름다워, 하늘은 새파랗지.

그가 말했던 파란 하늘을 닮은 커튼으로 창을 가린다. 다음 날에도 나는 이 커튼을 걷고 입 맞추리라. 추위에 떨고 있는 감옥 속 수인에게, 사막 속 행상대에게, 아프리카 녹음 속 인디언에게부드럽고 서글픈 나의 황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