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아시나요?
모르시겠죠, 아마. 내 딴엔 알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고 입에 담은 적도 없으니까 공주님은 짐작도 못할 거에요.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공주님. 제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빛나고 가장 눈부시고 가장 좋아한 건, 공주님의 눈동자였어요. 물론 유수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금발이나 상냥한 미소를 비롯해 공주님의 모든 모습이 가장 예쁘긴 하지만, 굳이 고르자면… 그 중에서도 가장 예쁜 걸 말하자면 말이에요. 공주님은 알까요? 당신의 눈동자가 얼마나 예쁘고 고운지. 짙은 속눈썹 아래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어떤 빛을 가지고 있는지.
전쟁에 나간다고 했을 때, 말리던 공주님의 말을 들었으면 이런 생각을 하지도 않고 상처 입지도 않았을까요? 그저 평소처럼… 평소처럼, 공주님의 기사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었을까요? 전쟁 한복판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우습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공주님. 정말로 그랬다면, 누군가가 그랬을 거라고 단언해주기만 한다면… 저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네요. 아니, 아니에요. 시간을 되돌릴 것도 없이, 그저 공주님을 보기만 한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나의 하나 뿐인 주군, 나의 공주님.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전쟁에 나간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을까요? 내 빈자리를 보며 허전하다, 라고 중얼거리기는 할까요? 허튼 욕심이겠지만 부디 그래주셨으면 좋겠어요. 상처에 붕대를 메어 일시적으로 피가 흐르는 걸 막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공주님의 곁에 돌아가기엔 너무 버거울 것 같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기적이겠지요.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공주님, 전쟁이 끝나면 공주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할 작정이었어요. 멋지게 한쪽 무릎을 꿇고 프리지어 꽃다발을 공주님께 내밀면서, 평생을 나와 함께 해달라고. 한낱 기사가 공주님께 청혼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저는 그만큼 공주님을 사랑하고, 청혼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어요. 공주님께서 받아들여주시든, 그렇지 않든 간에.
아… 공주님. 밖에서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모를 큰 함성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막을 내린 모양이에요. 저또한 생각하는 것조차 이젠 힘에 부치구요. 부디 승리의 여신이 우리의 손을 들어 공주님의 얼굴에 미소가 담기기를. 한낱 기사 때문에 울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공주님, 공주님은 웃는 모습이 가장 예뻐요…… 그러니 저 때문에 눈물이 흐르시거든 활짝 웃으시길. 공주님의 눈동자 다음으로 가장 예쁜 것은 공주님의 미소니까……
* * *
「에녹 경!」
이건, 공주님의 목소리인가요? 아니면 그저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꿈을 꾼다는데, 하도 공주님을 생각하다 보니 이제는 가족이 아니라 공주님이 꿈 속에 나온 건지… 이 상황이 우스워 웃음을 터트리려다 배에 입은 상처에 웃음 대신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대신 흘러 나오네요. 이런… 제가 죽은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 죽었다면 이 아픔과 공주님의 것으로 추측되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그럼, 내 이름을 부른 공주님의 목소리도 사실이란 걸까요? 어쩐지 정말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에 황급히 눈커풀을 들어 올리자…
「정신이 들어요?」
아, 공주님. 안심을 하기 이전에 당신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에 지레 놀라 잠시 멍해지네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봤자 전혀 대답할 수가 없잖아요. 살아서 공주님의 곁에 돌아온 것은 다행이지만 우는 모습을 보려고 돌아온 것은 아닐 텐데… 그래도 다행이에요. 공주님의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나는 눈을 깜박이고 희미하게 웃으며 공주님의 섬섬옥수를 쥐었습니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보다, 조금 더 많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공주님.」
나의 주군, 나의 공주님. 당신의 눈동자가 여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보이는 것은 다만 제 착각일까요?
「저와, 평생을 함께 해주시겠어요?」
프리지어 꽃다발도, 멋진 분위기도 없는 초라한 청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주길.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나 싶더니만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터져 나옵니다. 아… 공주님. 공주님을 울리려고 한 청혼은 아닌데.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뻗을 찰나, 울먹이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네요.
「물론, 이에요, 당연하죠. 에녹 경.」
눈물에 젖은 회청색 눈동자가 온연히 나를 담고, 저는 새삼스레 공주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웃어요. 배가 심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뭐 이 기쁨에 비하면 그깟 고통 쯤이야. 이 상처가 다 아물 때면 정식으로 당신에게 청혼할게요. 그러니 공주님께서는 은은한 회청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계세요. 그럼 나는 공주님의 눈동자에 입 맞추고 꽃다발을 공주님의 품에 안겨 드릴 테니까.
회색빛이 도는 푸른 눈동자가 언제나 나만 담기를…… 나의 사랑스런 공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