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고 콕 집어 형용할 수 없는 것, 소녀는 그런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현실의 그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발이 땅에 붙어있지도 않으며 속력도 낼 수 없고 공기가 있으나 몸을 억누른다는 느낌은 없다. 말 그대로 공중에 부유하는 느낌이라, 소녀는 말로만 들어왔단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좀 더 아늑하고 부드럽고 따듯했지만. 어느새 소녀는 눈을 감고 나른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곳이 소녀는 무척이나 좋아서 이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에 있는 것들은 전부 잊어버린 채, 소녀 혼자있지만 혼자가 아닌 듯한 이곳에서.
문득 내리감았던 긴 속눈썹을 들어올렸을 때, 소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하얗고 맑은 빛이 여자의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빛이라기엔 뭔가 이상했지만…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눈이 부시질 않는데다 꼭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어렴풋한 형태를 띠고 있다.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손을 뻗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일렁임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손을 뻗는 데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잡아달라는 것처럼.
마침내 소녀의 손가락이 빛에 닿고, 소녀는 지레 놀라 몸을 움찔거렸지만 손을 떼지는 않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 소녀를 감싸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둘은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차이점이. 둘 중에 하나를 꼽을 수는 없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소녀는 빛이 더 좋았다. 손에 잡을 수 있으니까.
내친 김에 일렁거리는 빛을 더 가까이로 끌어 당긴 소녀는 가슴께로 그것을 옮긴 뒤,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빛의 일렁거림이 조금 잔잔해지나 싶더니만 가만히 있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잠잠해졌다. 내 뜻을 아는 거니? 소녀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웃음 짓고 몸을 웅크렸다. 금세 졸음이 밀려 왔다.
조금만, 조금만 자고 일어날게. 그럼 네 이름도 정할 시간도 있을 거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있을 테니까… 속으로나마 조용히 속삭였지만 소녀는 일렁거리는 빛이 충분히 그것을 알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듯함이 조금 더 진해졌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정말로 편안히 눈을 감은 채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웅크린 소녀의 품 안에는 생전 처음 보는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랐다가, 꿈 속에서의 일렁거리는 빛을 생각해내고 작게 웃었다. 그 빛이 너였구나. 속삭이는 목소리를 알아 들은 듯 강아지가 몸을 뒤척였다. 소녀는 강아지가 깰 세라 조심조심 침대에서 나온 뒤,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강아지를 사온 것이 틀림 없는 부모님께 할 말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