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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07 한 소녀가 죽었습니다.
2016. 7. 6. 16:45 category : 2012

한 소녀가 죽었습니다.

이녹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죽었다고 한다. 뉴스에 뜬 심각한 아나운서의 얼굴에 예은이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직후 나온 학교의 풍경이 자신의 옆 학교와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의 따돌림 문제로 죽었다는 말에 가볍게 혀를 찼을 뿐, 아슬아슬한 시간을 절감하고 밥을 우겨 넣느라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지만.

 

그러나 관심 없는 예은과는 달리 반 아이들은 옆 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충격적인지, 아침부터 심각한 얼굴로 계속해서 수군거리고 있다. 예은은 아침에 보았던 아나운서의 얼굴을 상기했다. 그 언니, 예쁘게 생겼었는데. 꽤나 엉뚱한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머리를 맞대고 사건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친구 중 하나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찾고 있던 예은의 책상을 두드렸다. 예은은 한쪽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 눈빛으로 묻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너는 걔 알아?”

누구?”

, 자살한 애.”

목소리를 낮춰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예은은 대답없이 고개를 으쓱하고 다시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관심을 잃은 친구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입을 놀린다.

 

*

 

쇄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제 어깨에 올까 말까 하는 작은 키-자신이 좀 큰 이유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숙이고 있는 고개, 옆 학교 교복.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만 낮춰 놓은 노래 음량에도 제법 거친 바람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했던 집에 가던 길이었다. 예은은 그 침묵이 익숙했으므로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걸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걷는 소녀의 침묵은 조금 의아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더라.

 

집이 어디야?’

 

라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을 건냈던가, 그래, 그랬던 것 같다. 그래놓고 어이가 없어 속으로 웃음을 자아냈었지. 그럼에도 그 소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치켜 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은을 바라보았다. 마치 말을 걸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예은은 그 표정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을 했었고

 

, 나 저기, , 학교 앞에, 아파트.’

 

소녀는 금세 고개를 다시 숙이며 조그맣게 대답했었다. 예은은 소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난 그 옆에 사는데, 태연스레 대답했었으니까.

이상하게 그 뒤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학교 생활이 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을 뿐.

 

*

 

죽은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마침 옆 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덕분이었다. 같은 학원에 다녀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때의 그 아이와 죽은 아이를 매치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은은 선생님 몰래 폰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매치시키는 건 쉬운데 그 아이가 죽었다는 실감은 나질 않았다. 그 때 딱 한 번 같이 갔던 것 뿐이니까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오늘 분식집 갈래?”

내일.”

 

시끌벅적한 하굣길, 물어오는 친구의 말에 손을 휘휘 저으며 대충 대답했다.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는 생각은분식집에 가서도 끊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적격이었다. 예은은 밀려드는 학생 무리에 몸을 맡기고 기계적으로 발을 옮겼다.

 

옆 학교, 자살, 집에 가던 길에 봤던 애. 애들이 하는 말을 주워 들은 바로는, 그 아이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처럼, 그리고 뉴스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따돌림을 받는 아이였고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고 한다. 유서도 있다고 했다. 예은은 그 아이처럼 작고 소담한 방과 절망감에 가득찬 얼굴, 눈물을 뚝뚝 떨궈 내면서도 펜을 꾹꾹 눌러 쓸 그 아이를 생각했다.

내가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 건가.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지른다. 솟아나는 피를 보면서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죽은 곳은 그 아이의 방이라고 했다. 바로 옆 아파트였다. 예은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멍한 얼굴로 그 아이가 산다고 했던 아파트를 바라봤다.

 

잘 가, 라는 단순한 말에도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던 그 아이, 동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왜소했었다. 키가 작긴 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을 텐데 예은의 머릿속엔 그렇게 남았다. 자살을 했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어찌 되었든, 나와 상관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친한 것도 아니었고 그때 한 번 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아무래도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공포영화를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에 예은은 인상을 찡그리고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