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에 사라진 소녀는 나를 보며 웃었던 그 아이와 똑같았다. 나는 그 아이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왜냐면 그 갈색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눈길에 얽매인 기분이 되었기 때문에. 소녀가 웃는다. 나의 볼을 쓰다듬는다. 나이는 없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는데 나는 다소 멍해진 기분으로 그저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나의 방, 어두운 나의 방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커튼을 걷으면 조금 나아질까.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곧 지워버렸다. 내 방 창문 바로 앞에는 건물이 있었다. 삭막한 갈색 벽돌. 그것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 넝쿨은 단단해. 누군가를 묶기에는 적격이지. 남자는 퍽 상냥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 물론 널 묶진 않겠지만. 안대로 가려진 시야에 네가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상냥하게 말하지 마. 나는 충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마 그녀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만. 그린 소다는 그녀의 입맛에 딱 맞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히스테리컬한 소리를 듣지 않는 것에 만족했다. 아, 처량한 내 신세. 혜연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아, 꿈이었구나. 너를 좋아해. 빙그레 웃으며 입김을 불어 내 손을 덥히며 속삭였다. 손에 가려진 입술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새어나오지만 그것은 이내 전해지지 못하고 손 안에서만 빙빙 맴돌 뿐이다. 너를 좋아해, 내가. 그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제목 없음. 메모장. 배고프다. 꺄르르륵,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탑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는 무서운 줄 모르고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몸을 뒤척이고 저런 아이가 세 명만 더 있더라면 유리창을 깨고도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생각 뿐이었지만. 여자는 나에게 물었다. 뭐라고? 기억이 나질 않아. 아무 것도 모르겠어. 달콤한 사탕을 마시고 싶어. 사탕은 녹여도 여전히 사탕이니까 단 맛이 날 거야, 횡설수설한 아이의 말은 그러나 조곤조곤 얌전했고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는 대꾸하며 아이의 이마에 입 맞춘다. 물거품에 사라진 인어는 과연 행복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차라리 왕자를 죽이고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눈 두덩이 위에 손을 올리고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돌아오는 대꾸는 평소와 똑같이 태연스럽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더 긴장되었다. 사랑은 항상 바뀌는 법이니까. 사랑 뿐만이 아니야. 영원한 건 없어, 렉스. 충고 어린 목소리에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내 이름은 레이나야, 건방진 마피아. 그녀는 당당하게 말하며 고개를 치켜 올렸다. 아, 길어. 이걸 언제 다 읽어. 언젠간 다 읽겠지. 5분이라는 시간은 제법 길고 잔인했다. 나에게는 더욱. 1초 만에 사람이 죽었어. 믿겨져? 너는 믿을 수 있어? 격앙된 목소리에도 나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대꾸했다. 응, 믿을 수 있어. 왜냐면, 그리고 총을 들고 그의 심장을 겨눈다. 내가 그 마피아니까. 소음기를 단 총에서 미세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나갔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곁에 총을 두었다. 굿 바이, 라스트 생존자. 1분 40초 후에 출항합니다. 경고 어린 목소리에 나는 그를 붙잡고 이마를 맞댄다. 보고 싶을 거야. 네가. 네가 너무 보고 싶을 거야. 잊지 않을게. 너도 나를 잊지 마. 그냥 과거에 이런 애가 있었구나, 정도로만 기억해. 올 수 있으면 올게. 그리고 너를 찾을게. 너에게 찾아갈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말을 하지 못하는 너는 그저 쉼없이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닦아낼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배가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손을 뻗지만 닿지 못한다. 아. 나의 하나 뿐인 연인. 보고 싶을 거야. 보고 싶을 거야. 나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끝이다! 아악! 2초. 1초.
10분
공백 제외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