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눈이 내렸다. 올해 들어 몇 번째 오는 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첫눈은 아니었다. 가을이 오늘 내린 눈을 특별히 여긴 이유는 다만 그녀가 올해 들어 눈을 맞은 것이 오늘 처음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낭만적으로 내리는 건 절대로 아니었지만. 고개를 들어 눈을 볼라 치면 눈에 들어와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날은 너무 추웠다. 더군다나 바람도 불어서, 그야 말로 눈보라가 휘몰아 친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를 딱딱 부딪히면서도 꿋꿋이 패딩 점퍼의 모자를 쓰지 않은 이유였다.
쾃츠가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지자, 정말로 집에 콕 틀어 박혀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정정하자면, 인혜와의 약속과 생필품이나 책 등을 사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나가지 않았다. 사실 만날 사람도 없고 약속을 잡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안부야 카카오톡이나 메일이 있고. 쾃츠 사람들로부터 주기적으로 톡이나 문자가 왔지만 그마저도 짧게 끝났다. 그녀는 여전히 혼자가 편했다.
“언니, 바빠요?”
그러다 보니 날짜 감각도 사라졌고 시간에도 점차 무뎌졌다.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날 때도 있어서, 처음에는 자괴감마저 들었으나 나중에는 그려려니 하게 됐다. 인혜와의 전화가 그녀를 깨우는 건 이미 일상이다.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눈을 맞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에취. 코를 문지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휴대폰은 참 따뜻하기도 따뜻했다.
-아뇨, 지금은 집. 설마 이제 일어난 건가?
“아니거든요. 오늘은 일찍 일어났어요”
-정말?
“진짜로.”
작게 울리는 웃음소리에 바보 같이 웃고 입을 열었다.
“오늘 크리스마스잖아요. 게다가 눈 내리고. 밖에 보여요?”
- 잘 보여요. 내내 집에 있느라 눈 오는지는 몰랐네.
“그래서 전화했어요.”
- 응?
“보고 싶어서…”
하여튼 등신 같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아서, 약속 잡는 것도 까먹고. 이제라도 만나자고 할까? 이리저리 고민해봤자 늘어나는 건 근심이요 잡생각이라, 가을은 쿨하게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마음 끌리는 대로 하기로 했다. 많은 생각은 좋지 않다. 오랜 시간 방황을 통해 얻은 유익한 깨달음 중 하나였다.
“눈 맞으니까 언니 보고 싶어서. 핫초코 마시고 싶다.”
- 집이에요? 지금 갈까?
“응, 아니요.”
- 응이라는 거에요, 아니라는 거에요?
“둘 다요.”
패딩을 입은 채로 쭈그리고 앉아 있다는 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슬슬 다리가 저려와,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지갑을 챙겨 들었다.
“언니, 뭐 마시고 싶어요?”
- 가을 씨가 마시고 싶은 핫초코.
“사 가지고 갈게요.”
방금 닫은 문을 다시 열며 덧붙였다. 대신 도착할 때까지 전화 끊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