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르제 디 올덴
카나르제 오닉스
21세, 올덴의 황제.
화려하고 찬란한 금발은 제 하나 뿐인 누이의 것처럼 완연한 금빛이라기 보단 차라리 흰빛에 더 가까워, 혹자는 금발이 아닌 백금발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빛 받으면 하얗다 할 정도로 밝고 아름답다. 부드러운 웨이브에 앞머리는 눈 약간 위쪽까지 오고 뒷머리는 목덜미를 덮고 내려온다. 눈동자는 얼핏 보기에 검을 정도로 짙고 무거운 보라색으로 항상 낮게 가라 앉아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햇빛을 받으면 감탄스러울 정도로 어여쁘게 빛난다. 으레 왕족과 같이 외모에 관해서는 대개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 났으나, 그것이 도련님마냥 곱상한 것이 아닌 퍽 날카롭고 위압적인 모습이다. 비단 생김새 뿐 아니라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하며 표정이 드러나는 때가 극히 드물다. 웃는 모습이 가히 아름답다, 라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본 사람이 없어 풍문에 불과하다. 잔근육 자잘하게 박힌 몸에 전체적으로 말랐다. 대개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는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되려 공정하고 왕에 걸맞다. 공과 사의 구분이 없으나 이는 사적인 일에 치중되었음이 아니라 사적인 일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니되 지나치게 이성적이라 모든 것은 합리적이고 타산적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일을 결정하고 순간적으로 계획을 짜고 그것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만지고 손을 보는 스타일로, 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두뇌의 영향이 크다. 명실상부한 천재. 머리를 이용하는 거라면 어느 것 하나 꿀리는 게 없다. 정치에서의 밀고 당기기에는 특히나 재능을 보인다. 뒷처리가 남거나 계획에서 어그러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여 항상 모든 루트를 생각해 두고 무리해서라도 계획대로 끌고 나가며, 이는 대개 백 퍼센트의 확률로 성공한다. 결과도 과정도 완벽해야 하는 완벽주의자. 때문에 어떤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것에만 집중하는데, 길게는 열흘 넘게까지 잠을 자지 않거나 밥을 먹지 않은 적도 태반이다. 매번 요위나의 핀잔(을 가장한 분노)를 듣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죽음에 대한 경각심도 무게도 없다. 이것은 죽음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닌, 그러니까 죽음과 멀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되려 죽음과 아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위나가 그를 보호한다한들 태어날 적부터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감정을 비롯한 모든 것이 죽었고 모든 것이 무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타고난 머리는 그것에 기름을 부었으면 부었지 덜어주지는 않았다. 때문에 황제가 된 지금까지도 종종 살아 있음을 낯설게 여긴다. 지금 이 상황이 가장 합리적인 것은 인지하지만 평생을 그 자신은 죽어야 했고 요위나는 오롯한 황제, 더도 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나르제에게 요위나는 그의 죽음을 초래하는 존재였고 동시에 그의 죽음을 막는 존재였으며, 그 모든 것을 제치고서라도 모든 것이 비롯되는 존재였다. 때문에 요위나는 카나르제의 모든 반응 따위에서 예외에 속한다. 사랑한다 말할 수는 없으나 굳이 감정을 정의해야 한다면 사랑한다, 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요위나가 옆에 있음으로서 모든 것에 균형이 맞는다.
태어날 때만 하더라도 감정이 지나치게 풍부하고 지나치게 예민하여 그 주변에 있는 죽음의 기류를 쉽게 알아차렸다. 때문에 툭하면 울음을 터트렸고 누이가 옆에 있어야만 간신히 그 울음을 그쳐, 항시 요위나가 곁에 있어야만 했다. 때문에 지금의 카나르제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죽었다는 것이 더 옳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없으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요위나에 관련된 일 뿐이다. 누구도 완전히 믿지 않는다. 잘 따라와주면 그대로 가는 거고 그게 아니면 서서히 정리해 마침내는 등을 돌린다. 필요에 따라 방법을 바꾼다. 달콤한 유혹으로 현혹하기도 하고 충성을 맹세케 하기도 하고 복종시키기도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 사람들을 만들어 놓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사람은 깔끔하게 내버린다.
머리에 비해 신체적인 것은 유달리 재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은 한다. 승마에는 유별난 재능을 보이는데, 전쟁터에 나갈 적에도 항상 말 덕분에 목숨을 유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매번 군단장들에게 지휘만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듣는다. 전략은 기이할 정도로 잘 짜면서 전쟁터에서는 몇 십 번이나 목숨줄이 왔다갔다 한다. 매번 승마 실력이나 군단장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군단장들과는 친밀하면서 신하들과는 썩 친밀하지 못함. 생각보다 성격이 지랄 맞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고, 근데 하는 말이 전부 다 옳은 말이라 찍 소리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지내는 수 밖에. 반란이나 반역의 기미가 있다 싶으면 되살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게 엎어 버리기 때문에 대개의 신하들은 군말없이 제 할 일 한다. 잘 하면 상을 주고 못 하면 벌을 주는 아주 당연한 이치를 따른다.
술을 기꺼워 하나 주량은 강하다. 매번 요위나에게 강제로 마심 당하고 취한 요위나를 챙기는 동시에 뒷정리를 한다. 좋아하는 건 달콤한 음식. 혀가 녹아 버릴 정도로 단 걸 즐겨 먹는다. 밥을 먹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을 때도 단 건 꼭 챙겨 먹어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여자들에게는 꽤 다정한 지라 지위를 제하고도 주위에 여자는 많지만 본인이 칼 같이 선을 그어 황후석은 아직까지도 공석이다.
이따금 왕위에 오른 요위나가 자신을 죽이는 꿈을 꾼다. 요위나는 웃으며 카나, 나를 용서해라, 라는 말과 함께 그를 찌르고 그는 번져가는 핏자욱을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어차피 이것이 당연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허상이나 그 꿈을 꿀 때마다, 묘해지는 기분을 감출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