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너에게 등을 돌렸겠지.”
“……”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 지속될 수 있는 건 그것 때문이야.”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나 잔인하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TV의 채널을 바꾸는 소리가 하릴없이 섞인다. 조화롭다면 조화롭고,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인 소리들에 귀 기울였다.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 받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를 원했다.
그녀는 사랑 받아야 마땅했으나 사랑 받기를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따금 나에게 되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녀의 눈동자에 내가 평생 담기지 않는 것처럼. 그녀와 나 사이에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수없이 시간이 흐르더라도. 시작이 없었으니 끝도 없겠지.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불현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멍하니 흐르는 물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