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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6 라뮈올, 신호등
2016. 1. 18. 00:20 category : 2015

  비가 온 뒤의 거리는 습기로 가득했다. 리네라는 우산을 접은 다음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먹구름이 가득해 원하는 푸른빛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곧 비가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등교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의 거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했다. 선생님에게는 늦게 간다고 진작 말해두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폰이 연신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리네라는 우산을 다시 펼치고 제 어깨 위에 올렸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삼십 분. 이대로 안 가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지루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고약한 버릇이었다. 신호등의 빨간 불이 선명하다. 집 앞의 횡단보도는 늘 신호가 늦게 바뀌었다.

  눈을 깜박인 순간 그 자리에 서 있는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 놀라지 않은 것은, 그녀가 그만큼이나 이변을 바라고 있었고, 한번쯤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불확실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네라는 놀라는 대신 눈을 한 번 깜박이고 탄성을 내질렀다. 와, 머리가 빨간 불보다도 붉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또 다시, 그가 자신에게로 올 것이라는 예감을 품었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것은 쉽게 확신으로 바뀌었다. 입 안에서 무언가가 맴돌았으나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일까? 리네라는 조금 웃었다.

  도망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신호가 바뀌고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의식한 행동은 아니었다. 다만 기다렸을 뿐이다. 그가 끝없는 기다림을 뒤로 한 채 그녀의 손을 잡기를. 그리고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다렸던 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원하는 게 있나?

  리네라는 두 눈을 휘어 웃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쥐고, 다른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비.

  비가 오게 해주세요.

  …….

  그리고 이름을 알려줘요.

  내가 부를 수 있는, 그리고 사랑하게 될 당신의 이름을.